시집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짧은 시간동안 좋은 구절을 읽을 수 있다는 것 같다..!
보통 출근 전에 10 ~ 20분 동안 책 읽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 중인데 긴 소설책보다 읽는 부담이 훨씬 덜하다
시인의 말
"'불행이 건드리고 간 사람들 늘 혼자지.'
헤르베르트의 시구를 자주 떠올렸다.
한 사람을 조금 덜 외롭게 해보려고 애쓰던 시간들이 흘러갔다."
책의 서두에 있던 구절부터 마음에 와닿았다
<청혼>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순수한 학생 시절의 사랑을 생각나게 하는 시라서 더욱 좋았다.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 => 나는 나 자신에게 있어 영원히 이방인이다 라는 책 구절이 생각났다
나는 나 자신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지만 남들에게 집중하느라 나에 대해 가장 잘 모르지 않을까? 싶었다
<사랑의 전문가>
...
나는 기름의 일종이었는데, 오 나의 불타오를 준비.
너는 나를 사랑했었다. 폐유로 가득 찬 유조선이 부서지며 침몰할 때,
나는 슬픔과 망각을 섞지 못한다. 푸른 물과 기름처럼. 물 위를 떠돌며 영원히
이 시는 다른 시처럼 문단이 나눠져 있지 않은데 그것 때문에 화자가 슬퍼서 정신없이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ㅠ
이 시집에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시들이 몇 개 있는데 이 시도 그 중에 하나였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를 보던 중 사망한 고등학생 분의 부모님이
아들이 입고 있었던 교복에 기름 냄새를 빼려고 욕탕에 계속 담가놓고 있지만
아무리 빨아도 옷의 기름 냄새가 빠지지 않는다면서 우시던 장면이 생각났다
물에 섞이지 않는 기름처럼 "나는 슬픔과 망각을 섞지 못한다"는 구절이 기억에 남았다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
...
예은아 거기서도 들리니? 아빠의 목소리가
"얘들아, 어서 벗자 이건 너희들이 입기엔 너무 사이즈가 큰 슬픔이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이는 "예은이"에 대한 시
한창 직장에서 사회 초년생으로 이리저리 치이던 시절에 위 구절을 읽다가 질질 울었던 기억이 있다ㅋㅋㅋ큐ㅠㅠ (보고 계십니까 과장님...)
[후기]
시집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책 모서리를 접어두는 습관이 있는데,
이 책은 반 이상의 페이지를 접어 두어서 너덜너덜한 책 중에 하나다
상황이나 심리를 표현하는 것이 직설적이지 않고, 감각적인 표현이나 뭉클한 비유로 풀어내는 것이 너무 좋았다
특히 너무 모호하거나 이해가 어려웠던 내용이 전혀 없어서, 가을을 맞아 감성적인 시집을 읽어보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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